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엘살바도르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으면서도 동시에 높은 지지를 받는 지도자로 부상했습니다. 1981년 7월 24일 팔레스타인계 이민자 출신의 조부모를 둔 가정에서 태어난 부켈레는, 2019년 만 37세의 젊은 나이로 대통령이 되어 엘살바도르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정치 입문과 초기 성과
부켈레는 원래 사업가 출신으로 광고 회사를 운영하며 사업계에서 활동했습니다. 그의 정치 경력은 2012년 누에보 쿠스카틀란 시장으로 시작되었으며,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엘살바도르 수도인 산살바도르의 시장을 역임했습니다. 시장 재임 기간 동안 그는 가로등 설치, 공원 조성, 도서관 건립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범죄율을 16% 감소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산살바도르 시장으로서 부켈레는 혁신적인 접근 방식을 보여주었습니다.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교육에 힘을 쏟으며 범죄 예방에 집중한 것입니다. 이러한 성과는 그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2019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갱단과의 전쟁: 극적인 치안 개선
부켈레 대통령의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자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갱단과의 전쟁'입니다. 2022년 3월, 3일간 87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이를 지금까지 30여 차례 연장해 오고 있습니다.
비상사태하에서 부켈레 정부는 체포·수색영장이나 명확한 증거 없이도 구금이나 수색을 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총 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체포되어 투옥되었으며, 이는 엘살바도르 국민 100명 중 1명이 넘는 비율에 해당합니다.
치안 정책의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극적이었습니다. 엘살바도르의 살인율은 2018년 인구 10만 명당 51건에서 2024년 1.9건으로 급감했습니다. 2015년 인구 10만 명당 105.2건이었던 살인율이 2023년에는 2.4건으로 떨어져, 미주 대륙에서 캐나다를 제외하고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2022년 12월 15일에는 단 하루 동안 살인 사건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아 부켈레 대통령이 엘살바도르를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비트코인 도입과 경제 혁신
부켈레 대통령의 또 다른 주목받는 정책은 2021년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한 것입니다. 이 혁신적인 정책의 배경에는 엘살바도르 국민의 70%가 은행 계좌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있었습니다. 부켈레는 비트코인 도입이 일자리 창출, 금융소외 계층의 금융 접근성 개선, 송금 수수료 감소 등의 혜택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비트코인 지갑 개설 시 30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지급하는 정책을 시행했으며, 세금으로 지속적으로 비트코인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2025년 현재 엘살바도르가 보유한 비트코인은 6,284 BTC로 현재 가치 약 6억 8,200만 달러에 달합니다. 부켈레는 매일 비트코인 1개씩을 구매하는 '1일 1코인' 정책도 발표했습니다.
보다 야심찬 계획으로는 라우니온 일대에 비트코인 시티 건설을 발표한 것입니다. 콘차과 화산 근처에 위치할 이 도시는 화산 지열 발전을 활용해 전력을 공급하고 암호화폐 채굴장도 운영할 예정입니다. 자금 조달을 위해 10억 달러 규모의 '볼케이노 본드'를 발행할 계획도 밝혔습니다.
압도적인 국민 지지와 국제적 인지도
부켈레의 강력한 치안 정책은 국민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2019년 취임 후 첫 3개월간 국정 지지도는 90.4%를 기록했는데, 이는 2004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였습니다. 2020년 말 여론조사에서도 10점 만점에 8.37점의 지지를 받았고, 최근까지도 지지율이 80-90%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024년 2월 대선에서 부켈레는 85%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첫 번째 당선 때보다 32%포인트나 상승한 수치로, 국민들의 변함없는 지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갱단 척결을 통한 치안 개선이 가장 큰 성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부켈레의 인기는 엘살바도르를 넘어 중남미 전역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에콰도르, 과테말라 등 다른 중남미 국가의 대선 후보들이 '부켈레 따라하기'에 나서며 자신들을 각국의 부켈레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이는 중남미 지역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치안 불안 문제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비판과 논란: 독재자 논란과 인권 문제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부켈레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가장 큰 비판은 인권 침해와 독재적 행태에 관한 것입니다. 국가비상사태 기간 동안 체포된 8만 명 중 상당수가 무고한 시민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으며, 현지 인권단체들은 이 중 3분의 1이 무고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경찰들에게 매일 범죄자 체포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는 지침이 있어 무차별적인 체포가 이루어졌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특정 문신이나 거주 지역을 문제삼아 무고한 시민을 체포하거나 지적 장애인을 구금한 사례도 보고되었습니다. 열악한 구금 환경으로 인해 최소 153명이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부켈레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독재자라고 불려도 좋다. 국민들이 거리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독재자라고 불리길 원한다"며 자신의 정책을 옹호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독재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2020년 부켈레는 40명의 군인을 국회에 투입해 의원들을 위협하며 1억 900만 달러 규모의 차관을 승인하도록 압박한 바 있습니다. 2021년 총선에서 여당이 절대 다수를 확보한 후에는 검찰총장과 대법원 헌법재판부 판사 5명을 모두 교체했습니다.
2025년 7월에는 대통령의 무제한 연임을 가능하게 하는 헌법 개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또한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6년으로 연장하고, 차기 대선을 2027년으로 앞당기는 내용도 포함되었습니다. 국제사회는 이를 독재로의 회귀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엘살바도르 국민들의 지지는 여전히 높은 상황입니다.
경제적 성과와 한계
부켈레는 취임 초기 경제성장률 3.5% 달성을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이를 위해 4차 산업혁명과 연계된 농업, 정보통신, 교육 등 3대 전략에 중점을 둔 경제도약계획을 추진했습니다. 세계은행이 2019년 엘살바도르의 경제성장률을 2.5%로 전망했으나, 부켈레 정부는 민간투자 증가를 근거로 3% 성장을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하지만 비트코인 정책은 경제적으로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비트코인 구매를 위해 약 1억 700만 달러를 투자했지만, 비트코인 가격 하락으로 인해 투자금의 절반이 넘는 약 6,000만 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국제신용평가기관 피치는 비트코인 투자 손실 등을 이유로 엘살바도르의 국가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으로 강등하기도 했습니다.
엘살바도르 중미대학교(UCA)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7%가 부켈레의 비트코인 정책은 실패라고 평가했으며, 75% 이상이 2022년 들어 단 한 번도 비트코인을 실제 화폐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는 비트코인 정책이 당초 의도와 다르게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국제적 위상과 외교 관계
부켈레는 국제적으로도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 베네수엘라 갱단원 238명을 엘살바도르로 추방하는데 협력했습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부켈레 대통령에게 새로운 차원의 권력과 글로벌 인지도를 부여하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부켈레는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하여 자신의 정책과 성과를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는 베네수엘라 갱단원들이 엘살바도르의 테러범수용센터(CECOT)로 이송되는 영상을 자신의 엑스(X) 계정에 올리며, 미국 법원의 추방 중단 명령을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미래 전망과 과제
부켈레의 엘살바도르 통치는 여전히 진행 중인 실험입니다. 치안 개선이라는 명목하에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지, 비트코인 정책이 실제로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입니다.
국제사회는 부켈레의 독재적 행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지만, 엘살바도르 국민들은 과거 30년간 민주 정부에서도 해결되지 않았던 치안 문제가 개선된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와 안전 사이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사례로도 해석됩니다.
부켈레는 "갱단 척결을 통해 사람들이 마침내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며 자신의 정책을 계속 추진할 의지를 밝혔습니다. 헌법 개정을 통해 무제한 연임이 가능해진 만큼, 그의 정책이 엘살바도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나이브 부켈레는 분명 엘살바도르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지도자입니다. 젊은 나이에 대통령이 되어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며 국가를 변화시켰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 가치와 인권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어, 그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부켈레가 엘살바도르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그리고 그의 정책 모델이 다른 중남미 국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