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준(宋泰俊)은 1970~1980년대 한국 조직폭력배 역사에서 호남파의 원조로 불리며, 서울 주먹계 판도를 뒤흔든 전설적 인물이다. 그의 생애는 광주를 기반으로 한 지역 깡패에서 전국구 폭력조직의 대부로 성장한 과정을 보여주며, 김태촌·조양은 등 차세대 주먹들의 멘토 역할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이면을 형성했다. 특히 1975년 사보이호텔 습격사건을 기점으로 기존 서울 토착 세력인 신상사파를 몰락시키며 호남계 조직의 시대를 연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출신 배경과 초기 활동
광주에서의 기반 형성
송태준은 1940년대 전라남도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부터 광주 지역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60년대 초반 이미 광주 일대의 불량 서클을 장악하며 "송깡"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는데, 이는 그의 과감한 행동력과 조직 통솔 능력을 반영한 것이다. 1960년대 후반 중앙정보부와의 마찰로 수감 생활을 반복하며 교도소 내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1973년 8·15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한 후 본격적으로 서울 진출을 시도했다.
서울 진출과 호남파의 기반 구축
1973년 광주교도소 출소 후 김태촌을 비롯한 젊은 조직원들을 이끌고 상경한 송태준은 무교동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호남 출신 조직원들의 후견인 역할을 시작했다. 당시 서울은 신상사파(申相事派)가 주도하고 있었으나, 송태준은 호남 출신의 박종석(번개파), 정학모, 오종철 등과 연합해 "범호남파"를 형성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그의 조직 운영 방식은 전통적인 혈연·지연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사업적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 조직으로 평가받았다.
사보이호텔 습격사건과 세력 재편
사건의 배경과 전개
1975년 1월 2일, 송태준의 지시 하에 조양은이 이끄는 행동대가 명동 사보이호텔에서 신상사파의 신년 모임을 기습했다. 당시 신상사파는 서울 유흥업소의 70%를 장악하고 있던 최대 세력이었으나, 호남파의 기습으로 주요 간부들이 부상당하며 급속히 약화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조직 간 충돌을 넘어 지역 기반 세력과 수도권 토착 세력의 권력 교체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사건의 파장과 영향력 확대
사보이호텔 사건 이후 송태준은 서울 내 호남파의 실질적 리더로 부상했다. 유흥업소 장악 전략을 본격화하며 1976년까지 명동·청량리 일대 30여 개 클럽을 접수했고, 카지노 사업을 통해 월 2억 원(현재 가치 약 200억 원)의 수익을 올리며 경제적 기반을 확보했다. 그의 성공 요인은 "혈투보다 협상"을 중시한 전략에 있었는데, 신상사파 잔당과의 화해를 통해 무리한 세력 확장을 피한 점이 특징적이다.
후계 구도와 조직 운영 철학
차세대 리더 양성
송태준은 김태촌·조양은·이동재 등 3대 패밀리의 두목들을 직접 키워낸 멘토 역할을 했다. 1976년 오종철 피습 사건 당시 김태촌에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는 게 진짜 실력"이라며 전략적 사고를 강조한 일화는 그의 지도 철학을 보여준다. 특히 조직원 교육에 있어 "주먹은 돈을 벌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현실주의적 접근법을 강조하며, 1980년대 초반까지 120여 명의 직계 조직원을 양성했다.
정치권과의 유착 구조
1979년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와의 밀월 관계를 구축한 송태준은 정치깡패 역할을 자청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진압 작전에 협력한 의혹을 받으며, 1983년 전두환 정권의 조직폭력배 일제 단속 시기에는 미리 정보를 입수해 조직원들을 피신시키는 등 기민한 대처로 명성을 이어갔다.
말년과 역사적 평가
세력 쇠퇴와 후계 체계 붕괴
1990년대 초반 김태촌의 범서방파와 조양은의 양은이파가 부상하며 송태준의 영향력은 점차 감소했다. 1992년 카지노 사업에서의 실패로 경제적 기반이 무너진 후, 1995년 폐암 진단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빈자리는 박종석·지만천 등 구세대 인물들이 메웠으나, 2000년대 들어 신종 범죄 조직들의 등장으로 전통적 조직폭력배 구조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한국 조직폭력사에서의 위상
송태준은 지역색을 기반으로 한 최후의 전국구 조폭 두목으로 평가받는다. 2013년 김태촌의 장례식에서 "우리 시대는 끝났다"는 추모사는 그의 시대를 상징적으로 종결짓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업적 접근법은 2000년대 합법적 기업으로 위장한 조직폭력배들에게 계승되었으며, 유흥업소 장악 전략은 현재까지도 일부 지역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결론: 과도기적 존재의 역사적 의미
송태준의 생애는 한국 조직폭력사의 전환기를 상징한다. 혈연·지연 중심의 전통적 깡패에서 탈피해 사업적 감각을 갖춘 현대적 범죄 조직으로의 진화를 주도했으며, 정치권과의 유착을 통해 조직폭력배의 사회적 위상을 재편했다. 그의 흥망성쇠는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의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발생한 법치 공백을 적극 활용한 사례로, 경제 성장기 어두운 그림자의 실체를 보여준다. 오늘날 디지털 범죄로 진화한 조직폭력배들과 비교할 때, 송태준이 대표하던 시대의 폭력조직은 오프라인 공간의 물리적 지배력을 기반으로 한 마지막 세대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