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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성 크기 : 고대 문명의 난공불락 요새, 그 고고학적 실체와 규모

by jisiktalk 2025. 12. 6.

여리고성은 성경 속 기록과 고고학적 발굴이 교차하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입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이중 성벽 구조와 그 실제 크기(길이 약 300m, 너비 약 160m 추정)는 수많은 연구의 대상입니다. 본 글에서는 여리고성의 지리적 위치, 발굴 역사를 통한 성벽의 구조와 규모, 그리고 성경 기록과의 관계 등 고고학적 관점에서 밝혀진 여리고성의 모든 것을 자세히 다룹니다.

여리고성의 고고학적 발굴 역사와 지리적 배경

여리고성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지속 거주 도시 중 하나로, 그 역사적 중요성만큼이나 수많은 고고학적 발굴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특히 성경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극적인 붕괴 사건 때문에 종교적, 역사적 관심이 집중되는 곳입니다. 여리고성의 정확한 크기와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발굴 역사와 그 지리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리고성의 지리적 위치: 세계에서 가장 낮은 도시

여리고는 요르단 계곡 내에 위치하며, 사해(Dead Sea) 북서쪽의 비옥한 오아시스 지대입니다. 이 지역은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육지 지점 중 하나로, 해수면 아래 약 250m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풍부한 샘물 덕분에 주변의 황량한 사막과는 대조적으로 고대부터 농업이 발달했으며, 이는 여리고가 오랜 기간 문명의 중심지로 기능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가 됩니다. 이 지리적 이점은 도시의 규모와 번영에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초기 발굴과 캐슬린 케년의 기여

여리고성 발굴은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었으나, 20세기 초 존 가스탕(John Garstang)과 이후 캐슬린 케년(Kathleen Kenyon)의 발굴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케년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정밀한 발굴 작업을 수행했으며, 여리고의 성벽과 방어 시설의 복잡한 층위를 밝혀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케년의 발굴은 여리고 테일(Tell es-Sultan)의 역사적 시대를 구분하고,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이르는 도시의 연속적인 거주 흔적을 확인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고고학적 작업의 축적을 통해 여리고성의 실제 규모와 난공불락의 구조가 서서히 드러나게 됩니다.

여리고 성벽의 구조와 난공불락의 비밀

성경 기록에서 여리고성은 이스라엘 백성이 7일 동안 돌아 마지막 날 나팔 소리와 함께 기적적으로 무너진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로 묘사됩니다. 고고학적 발굴은 이러한 성경적 묘사를 뒷받침하는 놀라운 방어 구조를 실제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여리고 성벽은 단순히 하나의 벽이 아니라, 이중벽(Double Wall) 구조를 가진 복잡하고 견고한 방어 시스템이었습니다.

외벽과 내벽으로 이루어진 이중 성벽 시스템

여리고성의 방어 시스템은 크게 외벽내벽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두 벽은 서로 일정 거리를 두고 축조되었으며, 그 사이에 경사면을 조성하여 적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구분 구조적 특징 추정 높이 (기초 포함) 추정 두께 건축 재료
외벽 기초 높이 5m 가량의 기초 성벽 (석조) 약 5m -
외벽 상부 진흙 벽돌벽 약 7m 약 2m 진흙 벽돌
총 외벽 높이 - 약 12m - -
내벽 지상에서 솟아오른 둑 위에 축조 약 14m - 진흙 벽돌 및 석재 혼합
전체 방어 체계 이중벽과 경사면(글라시스) 포함 최대 19m 이상 (둑 포함) - -

이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여리고성은 높이 약 5m의 석조 기초 성벽 위에 두께 약 2m, 높이 약 7m의 진흙 벽돌벽을 다시 쌓아 올려 외벽을 완성했습니다. 이는 약 12m에 달하는 엄청난 높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쪽에는 지상으로 약 14m 높이의 거대한 토성(둑) 위에 내벽이 솟아 있었습니다.

방어력을 극대화한 경사면(글라시스)의 활용

외벽과 내벽 사이에는 가파른 경사면(Glacis)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경사면은 흙과 돌을 다져서 만든 것으로, 성벽의 바닥을 보강하는 동시에, 적들이 성벽에 가까이 접근하거나 공성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극도로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적군이 이 경사면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어려움을 감수해야 했으며, 이는 여리고성을 고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방어 시설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여리고성 크기의 고고학적 실체적 규모

성경의 이야기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여리고성의 방어 구조가 얼마나 견고했는지는 명확하지만, 그렇다면 그 도시의 실제 규모, 즉 크기는 어떠했을까요? 많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수많은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도시였을까요? 고고학적 발굴은 여리고성의 실제 규모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도시 전체 면적 추정치

고고학자 캐슬린 케년의 발굴 보고서와 이후 연구들을 종합해 볼 때, 여호수아가 정복한 청동기 시대 후기(Late Bronze Age)의 여리고성은 생각보다 아주 거대한 규모는 아니었습니다.

  • 길이(최대 지름): 약 300m
  • 너비(최소 지름): 약 160m
  • 추정 면적: 약 4.8 헥타르 (약 1만 4500평)

이 크기는 현대 도시의 기준으로는 매우 작은 규모이지만, 기원전 2천년 경의 근동 지역 도시 국가(City-State)의 규모로는 일반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의 중요성은 그 크기보다는 전략적 위치난공불락의 방어 시설에 있었습니다.

추정 인구 규모

도시의 면적을 바탕으로 고고학자들은 여리고 성 내부에 거주했던 인구 또한 추정합니다. 당시 도시 거주 밀도와 생활 공간의 크기를 고려했을 때, 여리고성의 인구는 약 2,000명에서 3,000명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숫자는 도시를 방어하고 내부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규모였음을 시사합니다.

고고학적 여리고성과 신석기 시대의 거탑

여리고성 발굴지인 텔 아스-술탄(Tell es-Sultan)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성벽 외에도 신석기 시대(Pre-Pottery Neolithic A, 약 기원전 8000년경)의 놀라운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 여리고 거탑(Jericho Tower): 신석기 시대에 축조된 이 석조 탑은 높이 약 8.5m, 지름 약 9m에 달하며, 내부에는 계단이 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방어/의례 구조물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 신석기 성벽: 거탑 주변으로는 역시 신석기 시대의 성벽이 발견되어, 여리고 지역이 이미 만 년 전부터 견고한 방어 체계를 갖춘 정주 문명의 중심지였음을 증명합니다.

성경 기록과 고고학적 증거의 관계: 시대적 불일치 논란

여리고성 크기와 구조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 결과는 성경의 기록을 부분적으로 뒷받침하지만, 동시에 시대적 불일치라는 논쟁적인 이슈를 낳았습니다. 이는 여리고성 붕괴 시점에 대한 견해차에서 비롯됩니다.

초기 고고학적 불일치 주장

초기 고고학자들, 특히 캐슬린 케년은 여리고성의 가장 강력한 성벽(청동기 시대 중기, Middle Bronze Age)이 성경의 여호수아 시대(통상 기원전 15세기 후반)보다 이른 시점인 기원전 1550년경에 이집트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성경 속 여호수아 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에는 도시가 작거나 무방비 상태였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이로 인해 한동안 성경 기록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습니다.

후기 고고학 연구의 재해석

하지만 이후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Wood) 등 다른 고고학자들은 케년의 발굴 자료와 연대 측정 결과를 재검토하여, 여리고성의 붕괴 시점이 성경의 기록과 일치하는 청동기 시대 후기 초반(약 기원전 1400년경)일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성벽 붕괴 시점의 곡식 항아리의 풍부한 존재 등 성경의 내용(성 점령 후 약탈 금지)과 일치하는 여러 고고학적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여리고성 성벽 붕괴의 원인: 지진 가설

여리고 성벽이 어떻게 무너졌는지에 대한 성경의 기록(나팔 소리) 외에도, 고고학자들은 그 붕괴의 물리적 원인에 대한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가장 유력하게 제시되는 것은 지진(Earthquake)입니다.

여리고 지역의 지진 활동

여리고는 요르단 지구대(Jordan Rift Valley)의 단층선 근처에 위치해 있어 역사적으로 지진 활동이 매우 빈번한 지역입니다. 고대 지진으로 인한 지반 운동은 외벽의 석조 기초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그 위에 쌓인 진흙 벽돌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를 제공했을 것입니다.

성벽 붕괴의 특이한 양상

고고학적 발굴은 여리고 성벽이 밖으로 무너져 내린 특이한 양상을 보여줍니다. 성벽이 붕괴되면서 토대 경사면(글라시스)의 아래쪽에 커다란 흙무더기 램프(ramp)를 형성했는데, 이는 침략자들이 무너진 성벽을 밟고 도시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지진이 이러한 붕괴 양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물리적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여리고 성터의 현재 모습과 관광의 의미

오늘날 여리고 성터는 텔 아스-술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고대 도시의 흔적을 간직한 채 일반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수천 년에 걸친 문명의 층위를 직접 볼 수 있습니다.

텔 아스-술탄의 주요 유적

  • 신석기 시대 거탑: 여리고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상징입니다.
  • 청동기 시대 성벽 잔해: 복잡한 이중 성벽 시스템의 기초와 무너진 진흙 벽돌의 잔해를 통해 성경 속 역사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고고학적 트렌치: 발굴을 위해 파 놓은 깊은 구덩이(트렌치)를 통해 여리고 지역에 축적된 수많은 문명의 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여리고성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

여리고성은 단순한 고대 도시 유적을 넘어, 인류 문명의 연속성성경 기록의 역사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그 견고했던 크기와 구조가 물리적, 혹은 기적적인 힘에 의해 무너진 사건은 고대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역사적, 종교적 영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여리고성 크기 및 구조 요약 정리

여리고성의 크기와 구조에 대한 주요 고고학적 정보를 다시 한번 정리합니다. 고고학적 증거는 여리고가 거대한 규모는 아니었으나, 그 방어력이 극도로 견고했음을 보여줍니다.

항목 상세 내용 (청동기 시대 후기 기준) 비고
도시 규모 길이 약 300m, 너비 약 160m 추정 면적 약 4.8 헥타르
추정 인구 2,000 ~ 3,000명 당시 도시 국가 규모로 적절
성벽 구조 난공불락의 이중벽(Double Wall) 외벽과 내벽으로 구성
외벽 높이 약 12m (기초 5m + 벽돌벽 7m) 높은 석조 기초 위에 진흙 벽돌 축조
내벽 높이 약 14m (지상 둑 위에 축조) 전략적 고지대에 위치
핵심 방어 요소 경사면(글라시스) 적의 접근과 공성 무기 사용 차단
붕괴 시점 (고고학적 재해석) 약 기원전 1400년경 성경의 여호수아 시대와 연관 가능성
물리적 붕괴 원인 가설 지진 활동 여리고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 반영

결론: 여리고성, 역사와 고고학의 교차점

여리고성은 단순히 벽이 무너진 성경 속 도시가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정주 문명의 흔적과 극도로 발전된 고대 방어 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고고학적 보고입니다. 그 크기는 현대의 대도시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나, 약 300m의 길이에 160m의 너비를 가진 이 작은 도시는 높이 약 12m의 외벽과 약 14m의 내벽으로 이루어진 이중 방어 체계와 경사면을 통해 가히 난공불락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고고학적 발굴은 여리고성의 물리적 규모와 구조를 밝혀내면서, 수천 년의 역사를 품은 이 고대 요새의 실체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