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지주회사란 무엇인가?
현대 기업 경영에서 지주회사(持株會社, Holding Company)는 단순한 기업 형태를 넘어 전략적 경영 도구로 자리잡았습니다. 지주회사는 문자 그대로 "주식을 소유하는 회사"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소유함으로써 해당 회사들의 사업활동을 지배하거나 관리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기업입니다.
한국 법률상으로는 "주식의 소유를 통하여 국내회사의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로서 자산총액이 5천억 원 이상인 회사"로 정의됩니다. 이때 주된 사업의 기준은 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자회사의 주식 가액의 합계액이 당해회사 자산총액의 100분의 50 이상인 것으로 합니다.
지주회사의 역사적 배경과 한국에서의 발전
금지에서 허용까지의 여정
한국에서 지주회사의 역사는 금지와 허용의 반복이었습니다. 1986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지주회사 설립 및 전환이 금지되었으나, 이후 대기업집단의 지분관계는 거미줄처럼 복잡해졌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순환출자 구조의 문제점이 드러나자, 정부는 1999년 4월 1일자로 공정거래법을 개정하여 지주회사 설립을 다시 허용했습니다. 이는 기업집단의 투명한 지배구조 정비와 경영 효율성 제고를 목적으로 한 조치였습니다.
국내 지주회사 1호, LG의 전환
2003년 국내 재벌그룹 중에서 LG그룹이 최초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였습니다. LG그룹은 IMF 위기 이후 기업 체질 개선 및 경쟁력 제고를 위한 장기적·단계적 구조조정을 추진하여 2003년 3월 1일 순수지주회사 ㈜LG를 설립했습니다. 회사 분할, 자회사 지분율 요건 충족을 위한 현물출자 및 공개매수 등 일련의 지배구조 변경 과정상의 법적 필요기간 등으로 인해 설립에 약 2년 9개월이 소요되었습니다.
지주회사의 유형과 특징
1. 순수지주회사
순수지주회사는 오로지 자회사 경영권만 갖는 회사로, 영업이나 생산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 회사 소유자본의 대부분을 자회사에 투자하는 지주회사를 말하며,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지분율만큼 자회사로부터 얻는 배당수익과 지분법평가이익, 브랜드나 로열티 수입이 주 수입원입니다.
2. 사업지주회사
사업지주회사는 영업과 생산이라는 기본적인 사업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특정계열사를 자회사로 거느리는 회사입니다. 어떤 지주회사가 다른 자회사의 주식을 보유함과 동시에 직접 생산·판매활동 등의 사업을 경영하는 회사를 말합니다.
3. 준지주회사
준지주회사는 아직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지주회사처럼 여러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회사입니다. 법적으로는 지주회사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지주회사 역할을 수행하는 기업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지주회사 설립 요건과 법적 규제
설립 요건
지주회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 자산총액 요건: 직전 사업연도 종료일 현재 재무상태표상 자산총액이 5천억 원 이상
- 주된 사업 요건: 자회사 주식가액의 합계액이 회사 자산총액의 50% 이상
- 계열회사 요건: 지주회사가 최다출자자여야 함
의무 지분 소유비율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주식을 그 자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40% 이상 소유해야 합니다. 단, 자회사가 상장회사인 경우, 공동출자법인인 경우 또는 벤처지주회사의 자회사인 경우에는 20% 이상 소유하면 됩니다.
부채비율 제한
지주회사는 자본총액의 2배를 초과하는 부채액을 보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지주회사로 전환하거나 설립될 당시에 자본총액의 2배를 초과하는 부채액을 보유하고 있는 때에는 2년의 유예기간을 둡니다.
지주회사의 장점과 단점
주요 장점
1. 투명성과 효율성 향상
지주회사는 단순한 소유구조로 인해 주주중심의 투명경영이 가능해집니다. 기존 국내 대기업들은 순환출자와 계열사 상호지급보증을 통해 연결되어 있어 대주주가 소수의 지분을 통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나, 지주회사 체제에서는 지배구조가 명확히 드러남에 따라 개별기업의 의사결정과 성과측정이 용이해집니다.
2. 신속한 의사결정
순환출자와 상호지급보증은 구조조정에 있어 큰 걸림돌이었지만, 지주회사를 통한 단순한 소유구조는 부실한 자회사의 조기매각, 우량기업의 조기인수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3. 리스크 분산
지주회사는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리스크가 분산됨에 따라 안정성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업부문이 자회사별로 분리되어 있으면 기업의 경영전략에 따라 자회사 매각, 인수 등이 비교적 수월해 기업구조조정이 용이합니다.
주요 단점
1. 자회사 지분율 고정
이미 정해진 자회사의 지분율을 마음대로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은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요소입니다. 지주회사가 소유한 자회사가 이미 시장에 공개되어 있는 경우에는, 투자자들은 여러 사업 부문 중에 매력을 느끼는 자회사에 원하는 만큼 투자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2. 부실 자회사 지원 리스크
지주회사가 소유한 모든 자회사의 실적이 항상 좋을 수 없으며, 부실 자회사를 지원해야 하는 리스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산 중공업의 자회사인 두산 건설이 경영 위기에 빠졌을 때, 두산 중공업은 당시 결산 기준 현금성 자산의 90% 이상에 해당하는 약 9,000억 원의 자금을 출자했지만, 결국 두산 건설은 회복하지 못하고 상장 폐지되었습니다.
국내 지주회사 현황과 동향
전체 현황
2023년 9월 말 기준 지주회사는 172개로 2021년 12월말 기준 168개보다 4개 증가했습니다. 지주회사 수는 1999년 제도 도입 후 꾸준히 증가했는데, 2017년 자산총액 요건 상향(1천억 원→5천억 원)에 따라 감소했지만, 2021년도 이후 다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172개 지주회사에 소속된 자·손자·증손회사는 총 2,373개로 지주회사 별로 평균 13.8개 소속회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전체 공시대상기업집단(82개) 중 과반수(42개) 기업집단이 집단 내 하나 이상의 지주회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38개 집단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대기업집단의 지주회사 전환
국내 30대 대기업 집단 중 최근 10년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그룹이 7곳 늘어 2012년 8곳에서 2022년 말 현재 총 15곳으로 증가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외한 국내 대기업 대부분이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그동안 지적받아 온 순환출자 문제를 해소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지주회사의 투자 가치와 디스카운트 현상
저평가 현상의 원인
지주회사들은 오랜 세월 못난이 종목군이었습니다. 우리 주식시장이 2020년대 들어 노골적으로 보았던 것처럼 물적분할과 인적 분할 후 쪼개기 상장하는 등 계열사들이 무더기로 상장되면서 지주회사들의 주가는 소위 "더블 카운팅"되면서 자동 디스카운트 되고 말았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주회사의 주가는 주당 순자산가치에 비해 디스카운트 되고 있습니다. 홍콩의 대표적 지주회사인 스와이어 퍼시픽사는 주당 순자산가치가 $58인데 반해 주가는 $33.9로서 약 42%가 디스카운트 되어 있으며, 국내 지주회사들도 주당 순자산가치에 비해 평균 30% 정도 주가가 저평가 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투자 동향과 전망
최근 지주회사들의 주가가 제법 강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2025년 5월 들어 대선일이 가까워지면서 지주사들의 주가는 52주 신고점을 경신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주회사의 주가 강세는 "상법 개정"과 맞물려 있습니다.
2025년에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밸류업' 모멘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지주사들이 자사주 소각 등 주주 환원을 늘릴 것이라는 증권사의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주요 그룹들의 자사주 비중은 SK그룹 24.8%, 두산그룹 18.2%, LS 15.1%로 높은 수준이며, 이에 따라 일부 지분 소각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지주회사의 전략적 진화
관리형에서 투자형으로
최근 지주회사 역할은 확 달라졌습니다. 기술 고도화로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순수지주회사는 그룹 차원의 불확실성 대응 전략을 짜고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혁신 산업 투자에 나서는 등 투자형으로 변화했습니다.
LG그룹 지주회사 ㈜LG는 경영전략팀 주도로 외부 투자처를 적극 물색 중이며, 인공지능과 바이오, 헬스케어 등 여러 신사업 분야를 대상으로 지분 투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GS그룹 지주회사 ㈜GS도 계열사와 함께 1억5500만달러를 출자해 2020년 8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벤처투자법인 'GS퓨처스'를 설립했습니다.
CVC 설립을 통한 혁신 투자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CVC) 설립이 허가됐기 때문에, 보유가 허용된 지 1년 만에 CVC의 평균 자산 운용 규모가 4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GS와 CJ, 효성 등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와의 비교
한국만의 독특한 규제 체계
지주회사에 대한 사전규제는 한국에서만 시행하며, G5 국가는 경쟁법, 회사법을 통해 사후규제만 시행합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지주회사의 출자 형태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미국 최대의 에너지 기업집단인 Southern Company 그룹은 최대 7단계 출자구조를 가지고 있는 반면, 한국은 원칙적으로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까지 출자를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증손회사 보유가 가능한 최대 3단계 출자만 허용합니다.
국제적 규제 완화 필요성
오늘날 주요 국가 중에서 경쟁법으로 지주회사를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대기업집단 내부거래 규제와 금산분리 규제 등을 대표적인 역차별 사례로 꼽았으며,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도 기업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래 전망과 시사점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역할
지주회사는 현대 기업 경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구조로, 효율적인 자원 배분, 전략적 의사결정, 그리고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구축에 크게 기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과도한 지배력 집중이나 소액주주 권리 침해 등의 우려도 제기됩니다.
상법 개정과 주주가치 제고
만약 상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지주사들의 주주 제고 전략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적 분할로 핵심 자회사를 분리하거나, 지주사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은 대기업 및 중견기업에 대한 투자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결론
지주회사는 단순한 기업 조직 형태를 넘어 현대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제도적 장치입니다. 1999년 도입 이후 20여 년간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와 경영 효율성 향상에 기여해왔으며, 최근에는 투자형 지주회사로 진화하며 혁신 생태계 조성에도 역할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해 과도한 규제, 소액주주와의 이해상충 문제, 그리고 주가 디스카운트 현상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습니다. 향후 상법 개정과 규제 완화를 통해 지주회사가 진정한 가치 창출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투자자 관점에서 볼 때, 지주회사는 안정적인 배당 수익과 포트폴리오 효과를 제공하는 매력적인 투자처이지만, 개별 자회사 대비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되는 특성을 이해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2025년 현재 밸류업 정책과 주주 친화적 경영이 확산되는 가운데, 지주회사들의 가치 재평가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