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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 헐버트의 묘비명: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의 마지막 메시지

by jisiktalk 2025. 1. 6.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의 독립과 문화를 위해 헌신한 미국인 선교사이자 교육자였습니다. 그의 묘비명은 그의 삶과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고 있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묘비명의 내용과 의미

헐버트의 묘비에는 그의 출생과 사망 연도, 그리고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하노라"는 그의 유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문구는 그가 한국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서울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위치한 호머 헐버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영문 비문

상단에는 영문으로:
"HOMER B. HULBERT
JANUARY 1863 - AUGUST 1949
MAN OF VISION AND FRIEND OF KOREA
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

한글 비문

묘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앙

  • "헐버트 박사의 묘" (김대중 대통령의 휘호)

우측

  • "일천팔백육십삼년 일월 이십육일 미국에서 탄생
  • 일천구백사십구년 팔월 오일 서울에서 별세
  • 선각자요 한국의 친우인"

좌측

  •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 단기 사천이백팔십이년 팔월 십일일 헐법박사 장의위원회"

특별 사연

묘비 중앙부는 원래 50년간 비어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묘비명을 써주기로 약속했으나 성사되지 못했고, 1999년에 이르러서야 김대중 대통령의 휘호로 "헐버트 박사의 묘"라는 글씨가 새겨졌습니다.

유언의 내용

  • 유언: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하노라"

이 문구는 헐버트가 자신의 조국인 미국보다도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는 실제로 서울 합정동의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묘비명의 역사적 배경

헐버트는 1886년 조선에 처음 도착하여 교육자, 언론인,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했습니다. 그는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고종 황제를 도와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1949년,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으로 다시 한국을 방문하였으나, 입국한 지 7일 만에 별세하였습니다. 그의 유언에 따라 한국 땅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묘비명의 추가와 수정

  • 1999년의 수정: 헐버트의 서거 50주년을 맞아 당시 대통령이던 김대중의 휘호를 받아 묘비명을 새겼습니다.

이러한 수정은 헐버트에 대한 한국인의 존경과 감사를 표현한 것입니다.

묘비명의 현재 상태

현재 헐버트의 묘비는 서울 합정동의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위치해 있으며, 많은 이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방문하고 있습니다. 묘비에는 그의 유언과 함께 그의 생애를 기리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방문 정보

  • 위치: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
  • 관람 시간: 일반적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 입장료: 무료

방문 시 헐버트의 삶과 업적을 되새기며 그의 한국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헐버트의 한국 사랑

헐버트는 한국의 독립과 문화를 위해 헌신한 외국인으로서, 그의 묘비명은 그의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의 삶과 업적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주요 업적

  • 한글 연구 및 보급: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한글에 띄어쓰기를 도입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 독립운동 지원: 고종 황제를 도와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헤이그 특사 파견을 지원했습니다.
  • 교육 활동: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한국의 근대 교육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결론

호머 헐버트의 묘비명은 그의 한국에 대한 깊은 사랑과 헌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의 삶과 업적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며, 그의 묘비를 방문하는 이들은 그의 한국 사랑을 되새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