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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파, 한국 조직범죄 역사 속 실체와 잊혀진 세력의 흔적

by jisiktalk 2025. 3. 14.

OB파는 1970~80년대 양은이파·서방파와 함께 대한민국 3대 조직폭력배로 활동한 범죄 조직입니다. OB파의 기원, 성장, 주요 사건, 이동재 두목의 행방, 그리고 사회적 영향까지 자세히 살펴봅니다.

OB파의 기원과 조직 형성 과정

OB파는 대호파의 후신으로 시작되었습니다

  • OB파는 1970년대 후반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대호파를 전신으로 합니다.
  • 대호파의 구성원들이 서울 진출을 계기로 조직을 확대하고 재편하며 ‘OB파’로 변화하였습니다.
  • 조직 명칭은 이동재 두목의 개인적 이니셜과 지역 기반의 상징성을 결합한 형태로도 해석됩니다.

이동재는 조직 확장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 OB파의 실질적인 두목인 이동재는 조직 운영의 중심 인물로, 강력한 리더십과 조직력으로 OB파를 키웠습니다.
  • 그는 조직원들을 효율적으로 계층화하고, 철저한 위계 질서를 구축하며 폭력배 조직의 모델을 정립했습니다.
  • 조직원 모집은 주로 유흥업소·도박장 관리 등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청년층 유입이 많았습니다.

OB파는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세력을 확대했습니다

  • 서울 강남, 중구, 종로 등 주요 지역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세력을 넓혔습니다.
  • 이후 경기·충청·전라도 일부 지역까지 활동 반경이 확장되었으며, 조직 간 협력 및 충돌도 빈번했습니다.
  • OB파는 당시 양은이파·서방파와 함께 ‘조직 폭력 3대 패밀리’로 불리며 전국적 위세를 자랑했습니다.

OB파의 주요 활동과 범죄 사례

유흥업소 장악과 보호비 갈취가 주 활동이었습니다

  • OB파는 고급 유흥업소 및 나이트클럽, 도박장 등에서 보호비 명목의 금전 갈취를 주요 수익원으로 삼았습니다.
  • 업주에게 협박 및 폭행을 통해 금전을 수취했으며, 해당 업소에 대한 '관리권'을 빌미로 조직 권위를 유지했습니다.
  • 이는 지역 상권 불안정과 시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주요 요인이었습니다.

다른 폭력 조직과의 충돌은 OB파 성장의 핵심 국면이었습니다

  • OB파는 양은이파, 서방파와 유흥업소, 도박장, 이권 사업을 두고 격렬한 충돌을 벌였습니다.
  • 1987년 OB파 조직원들이 양은이파 간부를 습격한 사건은 조직 간 전면 갈등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 이 사건 이후 조직 간 보복 폭력이 잇따랐고, 사회적 파장이 매우 컸습니다.

경찰과의 대립 및 체포 시도도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 OB파의 활동은 경찰 수사망의 핵심 대상이었으며, 주요 간부 검거, 사법처리도 반복되었습니다.
  • 하지만 당시의 공권력 한계로 인해 조직이 완전히 해체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 일부 조직원은 위장 사업체 운영 등으로 단속을 피하는 수법도 활용했습니다.

이동재 피습 사건과 조직의 쇠퇴

1988년, 이동재는 양은이파에게 피습을 당했습니다

  • OB파 두목 이동재는 양은이파의 습격으로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 이 사건은 당시 언론에서도 크게 다뤄졌으며, 조직 간 권력 싸움의 절정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입니다.
  • 이후 이동재는 국내 조직 활동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동재는 미국 뉴욕으로 이민하여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 이동재는 미국 뉴욕에서 슈퍼마켓 운영 등 합법적 사업에 종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한국에서는 그의 행방이 묘연해졌으며, OB파의 중심이 사라짐에 따라 조직은 자연스레 쇠퇴하게 됩니다.
  • 조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지며 OB파는 사실상 해체 수순에 접어들었습니다.

OB파의 잔재는 일부 비공식 조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 OB파의 일부 잔존 세력은 지역 조직으로 분화되며 독자 생존을 시도했습니다.
  • 그러나 공권력의 지속적인 수사와 사회적 감시 강화로 인해 영향력은 급감하였습니다.
  • 현재는 명맥만 남아 있을 뿐, 실질적인 조직력은 사라졌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OB파의 사회적 영향과 후속 변화

OB파 해체는 조직폭력에 대한 사회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 OB파의 범죄와 해체 과정은 조직폭력의 폐해를 사회적으로 인식하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 경찰의 수사 체계 강화와 조폭 근절 법률 개정 등 제도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 시민들의 조직폭력에 대한 경계심과 사회적 대응 여론도 높아졌습니다.

OB파 관련자들의 합법적 사업 전환 시도도 있었습니다

  • 일부 전 조직원들은 유통업, 부동산업, 건설업 등으로 전향해 합법적 경제활동을 시도했습니다.
  • 하지만 과거 이력으로 인해 여전히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었으며, 일부는 다시 범죄에 연루되었습니다.
  • 이는 조폭의 사회 복귀와 재범 가능성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폭 문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 확산에 기여했습니다

  • OB파의 범죄는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에서도 자주 소재로 사용되었습니다.
  • ‘범죄와의 전쟁’, ‘비열한 거리’ 등 콘텐츠 속 조폭 캐릭터는 OB파와 같은 실존 조직을 토대로 제작되었으며,
    대중은 이를 통해 폭력조직 실체에 대한 관심과 비판적 인식을 함께 갖게 되었습니다.

결론

OB파는 한국 조직폭력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실체로, 한때는 양은이파·서방파와 함께 3대 패밀리로 군림했지만, 결국 수많은 충돌과 범죄, 그리고 공권력의 수사 속에서 해체되었습니다. 이동재 두목의 피습 사건은 OB파 쇠퇴의 기점이 되었고, 조직은 점차 사회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OB파가 남긴 흔적은 오늘날에도 조직범죄에 대한 반면교사로 남아 있으며, 우리는 이 역사를 잊지 않고 범죄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경각심을 지속해야 할 것입니다.